타일로그 - 첫 타일 현장 경험
2024. 7. 21.
일자: 2024.07.03. 수요일
현장위치: 영등포 7층 건물(7층 + 옥상, 지하5층)
무슨 일이든 처음 경험하는 게 가장 새롭고 짜릿하다.
처음 출근은 아버지가 차를 태워주셨다. 나는 자차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음 출근부터는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해야한다.
아버지가 소개해주시는 먼 친척 관계의 타일 오야지, 사장님을 만나뵈러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은 아침 일찍 시작한다. 대부분의 현장 근로자들은 오전 7시면 일을 시작하신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도 8시에 기상하던 내가 이제부터 현장 출근을 위해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6시에 나왔다.
다행인건 첫 현장이 집에서 가까워서 대중교통으로 무리없이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처음 만나뵙는 사장님과 함께 일하게될 타일 팀 분들이 오셨다. 사장님과 아버지는 대화를 나누시다가 아버지는 내 짐을 내려주시고는 다른 현장으로 일을 하러 가셨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고는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 뿐이었다. 그리고 사장님은 현장에서 바빴다. 여기저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일에 관련해서 상의도 하시고 나를 신경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뭐라도 시켜주시면 좋겠다.."
따라다니지만 할 게 없으니 눈치만 보인다. 그러다가 빨간통과 하얀통을 층마다 옮겨놓으라고 얘기하신다.
"빨간통, 하얀통 1개씩 세트로 2층에 4개 올리고 3층에 4개 올려놔"
드디어 일을 한다. 그런데 통이 생각보다 들만했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빨간통과 하얀통은 애폭시의 경화제와 주제 였다.
무게는 들만했지만,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아직 설치되지 않아서 계단으로 들고 올라가야했다. 처음에는 할만했지만 평소에 맨몸으로도 이용하지 않던 계단을 무게있는 걸 들고 오르락 내리락 반복하니 어느새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래도 일을 한다는 것에 열심히 부지런히 옮겼다.
그렇게 시키신 일을 끝내고 보고할 겸 다음일을 받을 겸 사장님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사장님은 안보였다. 현장이 넓었고 찾으려니 계단으로 층을 옮겨다녀야해서 3~4층까지 올라가도 보고 지하 2층까지 내려가도 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1층으로 올라오니 사장님이 보여서 위로 올라가자 하신다.
올라가니 타일 팀원분들이 작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같이 커피타임을 가지면서 얼굴을 익혔다.
웃긴건 소개는 하지 않았다. 그냥 바로 시작이었다. 이름도 모르고 어떻게 불러야할지 애매해서 그냥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타일팀원분들 옆에서 일하는걸 지켜보다가 시키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박스에 노끈으로 패키징 되어 있는 타일을 노끈을 잘라서 한쪽에 바로 쓸 수 있게 깔아두라고 했다. 칼도 없어서 팀원분들 중에 나보다 동생인 분이 칼을 빌려줬다.
그분이 노끈을 자를 때에는 툭툭 잘렸는데 내가 자르니 잘 안 잘린다. 사장님이 옆에서 보시더니 답답했는지 한마디 해주신다.
"노끈은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잘라야 잘 잘려. 이렇게. 해봐"
비스듬히 자르니 완전히 잘리지 않고 끝에 실처럼 남는다. 그리고 칼날이 무뎌져서 한번에는 안되고 삐걱삐걱 소리내면서 썰듯이 잘랐다. 아무튼 그렇게 타일을 언박싱(?)하고 한쪽에 잘 깔아두었다.
"타일을 깔 때 아래에 박스 한장을 깔아. 바닥에 두면 타일 모서리가 잘 나가니까."
노끈 커팅에 이어서 두번째 팁이었다. 그렇게 나는 열심히 타일을 까서 날랐다. 600x600짜리 타일 그러니까 가로 세로 60cm 크기의 타일이 4장씩 박스에 들어있었다. 4장씩 들어서 옮기는데 요령이 없기도 하고 은근히 무거웠다. 혹여나 타일이 잘못될까 조심조심 옮기니 더 힘이 들었다.
어느정도 타일을 까놓으니 됐다고 하신다. 사장님은 애폭시를 좀 더 옮기라고 한다.
"4층, 5층도 해야하니까 3층에 3조 더 올려놔."
참고로 경화제, 주제 1세트를 1조라고 부른다.
애폭시를 들고 계단으로 또 오르락 하다보니 무릎 위 허벅지에 쥐가 나기 시작한다. X됐다.. 애폭시를 내려놓고 다리가 마비되듯이 움직이지 않아 계단에서 잠시 난간을 의지하며 서있었다. 좀 나아지면 다시 올라갔다.
그렇게 다 옮기고 사장님이 또 보이지 않았다. 또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잘 보이지 않아서 더 오래걸렸다.
아무튼 나는 타일 팀원분들 중에 혼자 하시는 분 옆에서 도와드리라고 했다. 그래서 그 선배님이 가져다 달라는 것 가져다 드리고, 타일 까놓고, 타일 까고 나온 쓰레기 정리하고 등등, 그러다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당연하다는듯이 걸어가길래 어디 정해진곳이 있는 줄 알았다.
나: "점심은 뭐먹어요?"
어린 타일 팀원: "저기요."
나: 아 오리주물럭이요?
어린 타일 팀원: 한식뷔페요.
나: 아하.
현장 점심은 한식뷔페가 국룰인가보다. 예전에 대학생때 2달 정도 했던 알바때도 현장에 설치된 한식뷔페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여기는 주변 식당의 한식뷔페집이다.
9천원에 반찬 가지수도 많고 수박도 정갈하게 썰어져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많이 먹어야겠다 싶어서 많이 펐는데 생각보다 잘 들어가지 않아서 많이 남겨버렸다. 안하던 일과 아침 일찍 땀을 빼다보니 지쳐버린 것 같다.
점심을 먹고 현장에 돌아가서 편의점에서 아이스커피를 사오고 젊은 팀원분과 얘기도 하며 짧은 시간을 가졌다.
"힘들죠? 처음에 힘들어요. 그 때 못버티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타일을 많이 시도했다가 이 시기에 많이 관두는 것 같다. 그러다가 이 현장이 계단도 많고 힘든 현장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떄 나는 오히려 희망을 가졌다. 여기가 힘든 현장이면 여기만 버티면 다른 현장은 좀 더 할만하다는 의미니까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남은 점심시간에는 어디론가 가서 박스나 다른 무언가를 바닥에 깔고 잠을 잔다. 낮잠이 얼마나 좋은지 이 때 알게된다. 나는 그냥 평평한 자재 위에 앉아있었다.
오후시간에는 타일 팀원분 옆에서 계속 도와드렸다. 작업할 수 있게 공간을 치우고 애폭시를 혼합하는 방법도 배웠다. 처음에 잘 몰라서 새로 깐 빨간통과 하얀통을 섞었다. 그러자 선배님이 놀랐다.
애폭시는 5:5로 섞어야해! 거기다 넣으면 5:5로 안되잖아, 옆에 반통 들어있는거에 넣어야지!
죄송합니다. 사고를 치고 선배님이 수습해주시고 나는 다음부터 5:5로 담아놓았다. 그리고 갈퀴달린 기계를 가지고 5:5로 담겨져 있는 통을 섞어주는걸 젊은 팀원분에게 배웠다. 빨간통은 검은색이고 하얀통은 흰색이 담겨있는데 둘이 잘 섞여야 한다.
약간 회색이 나올때까지 조금 오래 섞어줘야해요. 그리고 밑바닥까지 잘 섞어야 해요.
기계 돌리기 전에 통을 발로 잘 밟아서 잡아줘야되요. 안그러면 통만 돌아가서 위험해요.
너무 친절하게 알려줘서 감동이었다. 팀을 잘 소개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나는 배우고 그대로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배님이 섞어오라고 할때마다 신나서 섞어서 드렸다. 뭔가 도움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망치 어디갔지? 아래 내려가서 망치 좀 달라그래.
아 배터리 닳았네. 내려가서 배터리 좀 받아와.
선배님이 이것저것 시키는걸 계단을 오르내리며 하다보니 어느새 퇴근시간이 되었다. 현장직의 좋은 점은 아침 일찍 시작되다보니 오후 일찍 끝난다는 것이다. 일찍 끝나면 4시에도 끝나고, 늦어도 5시에는 끝나는 것 같다.
땀에 절은 작업복을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밖으로 나오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이전에 개발자를 했을 때에는 퇴근해도 회사일이 계속 생각나고 걱정되면서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으니 off가 잘 되지 않았는데 현장직은 퇴근하고 현장을 벗어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하고 off가 잘 되었다. 한마디로 퇴근하는 맛이 났다.
첫날인데 벌써 사고를 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뭔가 배워가는게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몸이 말을 안듣는 순간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해내는 과정에서 몸도 적응해나갈 것이다. 다치지 않고 일과를 마무리했다는 것에 감사했다. 내일도 화이팅 해보자! 아즈아!!